Jazzlantis

islamey.egloos.com

포토로그



시가현(滋賀県), 2016년 여름


작년 여름이었다. 이상 기후로 초여름부터 푹푹 찌는 더위가 몰려왔다.

정식 여름 휴가가 채 3주도 남지 않았건만 간사이행 피치 항공 왕복편을 예약했다. 이런 저런 일들을 피하다보니 휴가 일주일 전 날짜였다.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남의 간섭 없이 혼자 놀러다니고 싶었던걸까.

따로 연차를 쓸 수 없는 처지라 금요일 퇴근 후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에 오는 항공편을 찾아봤다. 김포 하네다 노선이 최고겠지만 그때 난 쉬고 싶었다. 몇년전 갔던 교토처럼, 오래된 건물과 낮은 지붕 사이를 걷고 싶었다. 그 낮은 지붕들 틈 사이로 해가 지면서 드리우는 그림자와 아직은 연한 싱그러움이 남은 초록의 나무가 그리웠다.

피치 못해 탄다는 피치. 남들은 특가로 잘도 가건만 주말 항공권은 그리 싸지 않았다. 간사이공항에 밤 열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예정이란 사실에 조금은 막막해졌다. 오사카 시내 따윈 관심없었다. 도착해서 하루카를 탈 시간이 될까, 리무진 버스를 타면 새벽 한시에야 도착하게 된다. 검색을 계속했다. 비슷한 질문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간사이 공항 입국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그랬다. 중국 관광객들의 급증으로 공항 입국장은 이미 헬게이트란다. 한시간 걸렸다는 후기도 봤다. 그렇다면, 교토라고 다를 건 없을거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 교토는 이제 없을 것 같았다. 이미 5년전에 다녀왔던 벚꽃철의 그 교토보다 심각한 인파 속에 합류해야할 것인가. 빨리 포기했다. 대신 다른 도시들을 검색했다. 우지, 와카야마, 이렇게 아는 소도시들을 쳐보다가 우연히 떠오른 지명이 있었다.

바로 비와코. 비파 모양의 호수로, 온천이 있다고 들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갈 기회가 없었던 그곳.


시가 면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교토에서 기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오쓰시가 있었다. 비와코 동편의 나가하마, 히코네도 궁금했지만 이쪽은 미에현에서 접근하는 편이 편하다고들 했다.

비와코 호반의 제법 큰 규모의 관광호텔을 예약하고 검색을 계속했다. 이곳에 숙소를 두고 교토를 왕복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오쓰시는 숨겨진 보물 창고같았다. 일본 천태종의 본산이라는 히에이잔, 무라카미 시키부가 머물렀다는 이시야마데라, 세 천황을 목욕시킨 우물이 있다는 미이데라. 이 정도만 해도 온천 좀 하며 쉬엄쉬엄 관광도 할 수 있겠다.

큰 욕심없이, 조용한 곳에서 쉬겠단 생각으로 시작한 여행이다. 위탁수하물없이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퇴근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 시간에 들어오는 항공기가 별로 없는지 입국심사는 너무나 빨리 끝났다. 공항 내에 위치한 닛코 호텔에 짐을 풀고 쉬었다. 그때 난 폐렴에 걸려있었다. 이른 새벽마다 깨서 어지러울 정도로 기침을 하곤했다. 그런 주제에 여행이라. 하지만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우고 아무도 모를 곳에 혼자 있는 기분만큼은 최고였다.

그렇게 복잡한 교토역에서 10분 떨어졌을 뿐인데 정말 시골마을인 오쓰시. 얼마나 시골이냐면 20분을 걸어도 편의점이 안 보이더라.

그리고 이곳은, 정말 보물창고였다. 절이든 신사든, 문화재를 보고싶다면 교토보다 백번 나은 선택이다. 문화재의 질과 양은 압도적인데 관광객도 압도적으로 적다. 오래된 축대를 따라 문화재 속을 걸어서 또 다른 문화재를 찾아갈 수 있는 길.

그러니까 이런 곳이다. 딱 내가 원하던 조용함과 자연과 문화재가 함께하는 곳.

찾아보니 전국시대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히에이잔 아래의 수많은 절 중에는 아케치미츠히데(!)의 무덤도 있다고. 이시야마데라가 있는 이시야마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최후의 거점이었고 엔랴쿠지는 오다노부나가가 불 살라버렸다가 히데요시가 재건하였며 등등. 하여튼 헤이안시대부터 중심지였단다. 지리적으로 교토와 가까우며 큰 호수로 내륙 수운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뭐 그렇단다.



완벽한 힐링 타임. 여기도 교토처럼 찾는 이가 많아지면 어쩌나, 하는 기우가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모밀 국수집 아줌마는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저녁 먹으러 간 소고기집의 서빙해주는 아가씨는 아주 수줍어하며 아는 영어를 모두 끌어모아 내게 최선을 다 해줬다. 비오는 날씨에도 여주인이 기모노 차림으로 문 밖까지 배웅하는 요릿집이 늘어선 호젓한 강가를 걸을 수 있던 곳.  이번 초여름에 또 가고 싶다. 비 오던 이시야마데라도 운치있었지만 그땐 맑은 날을 볼 수 있길.




역시 가장 힘든 일은 인간관계, 세상은 각박한가 Lane`s daily life

전세계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수상하기 이를데 없고, 나라에선 애를 낳으라 결혼을 해라 난리인데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와중에 내수 경기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그게 내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고 하니.....

세상이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 나 스스로가 가끔 놀란다. 소위 말하는 '정 없는' 성격이지만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나와 한세대 정도 차이나는 우리 보스는 그야말로 옛날 아재 스타일이다. 모든 이와 잘 지내고 싶고, 실제로 잘 지낸다고 믿으며 술집이든 밥집이든 단골 아니면 안 가시는 분이다(내겐 참 견디기 힘든 조건들이다). 남에게 신세지는 걸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성향이 가장 나를 미치게 한다. 그 정도로 서로의 사이가 가깝다고 여기시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신세지더라도 술이든 밥이든 다른 재화나 용역으로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실지도 모른다.

세대의 차이인지 나고 자란 환경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대체 이분이 왜 이러시는지는 알겠고 향후에도 안 변하실거고 난 절대적으로 을의 입장이니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일을 많이 시키든, 사람 성격이 이상하면 차라리 미워하고 끝내겠지만 더할나위없이 착한(직장에서 착한 사람 따윈 필요없다) 분이고 모든 행동의 근간에 선의가 자리하고 있기에 나의 내적갈등만 심해진다.

나 빼고 다 남이며 믿지 않으면 배신 당할 일도 없고 직장과 사생활은 절대 만나선 안 될 성격이라 믿고 근 30여년을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 모든 틀을 깨라 강요하시는 분과의 합의점은 어디일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미안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고 살아왔는데 적극적 미안함과 적극적 사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이해는 고사하고 수용하기도 힘들다.......

낯선 이와 대화하기 싫어 치킨 한마리도 어플로 시키는 요즘 애들의 세계와 ARS도 거슬려 상담원을 연결하는 기성세대의 간극은 정말 좁힐수 없을까. 생각해보면, 층간 소음이나 인터넷에서 민폐 운운하며 이슈가 되는 모든 일들의 근간은 개인주의와 기성사회의 충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아파트에서 뛰어서 아랫집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야 부실시공이 맞다. 그런데 옛날 애들은 안 뛰었나? 갑자기 아파트가 노후화 되었을까?

놀이터에서 안 뛰어논다지만, 요즘 애들 중에 집에 있는 애들도 별로 없다. 거진 어린이집이니 놀이학교니 다닐테고. 근데 소음 민원이 증가한다느건, 동일한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관점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애들이 뛰기 마련이지, 하던 사람들은 뛰는 애들은 네 자식이자 층간소음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이고, 애들은 뛰기 마련이라지만 왜 네 애들이 뛰는 걸 내가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되냐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거다. 동일하게, 뛰는 애들을 묶어놓냐는 부모측의  항변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애를 키우든 동물을 키우든 내가 고통을 겪는 소음의 원인인 이상 해결 방법까지 내가 짜내어야 하냔 항변으로 맞설 수 있겠다.

애를 아직 안 낳아본 입장이니 할 수 있는 말인데, 영유아에 대한 세상의 시선 운운하는 부모들이 이해가 가다가도 안 갈 때가 많다. 어린이들의 소음 발생을 받아들여야하는 불특정 다수는 대개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걸 그들은 알까?  장거리 비행시 몇시간씩 울어대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그에 관련된 글도  여행관련 커뮤니티에 심심치않게 올라온다. 애들 우는 거 저만 듣기 싫나요 등등. 도대체 왜 엄마들은 발끈하는걸까. 아니 우는 애 데리고 내리라 했나 돈 더주고 좌석 업글하라 했나. 불가항력이고 애가 울고싶어 우는 것도 아니니 몇시간씩 꾹꾹 참으며 인내심을 발휘한 사람들에게 제발 세상 각박 운운 좀 안 했으면. 최소한의 인정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전용기를 탈 수 없는 상대적 빈곤 때문에 당신 자식이 만드는 소음을 참고 참다가 인터넷에 하소연 한번 했다고 상처받지 않기를. 정말 각박한 세상이고 각박한 사람들이라면 애 우는 소리 때문에 몇시간씩 잠 설쳐도 이어폰 꽂고 참지 않았다.

왜 각박함은 내가 당할 때만 그렇게 쓰라리게 강조되는지. 공동체생활에서 누구나 본의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를 오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누군가는 나의 심성을 그렇게 각박하다 원망했을 수도 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